송연이(의빈 성씨)가 죽다!“전하! 이제 전하의 곁을 떠나려 하옵니다. 평생 전하와 함께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고 떠납니다.” 마침내 드라마 ‘이산’에서 송연이가 죽었습니다. 정조의 어진을 마무리하고 이제 사랑하는 이의 곁의 떠나 송연이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지켜
2008-06-04 08:10:10
수원을 본으로 하는 성씨들도 있을까??의외로 많다. 수원 김씨, 수원 방씨, 수원 백씨, 수원 이씨, 수성 최씨, 수원 최씨 등이 수원을 본으로하고 있는 성씨 들이다.수원 김씨(水原金氏) 수원 김씨의 시조 김품언(金稟言)은 신라 경덕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손자로 고려 현종때 거란군의 침입을 토평하는데 공
2008-01-17 17:40:29
김세환(金世煥) (교육자·독립운동가, 1899~1945)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자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를 사전에 조직하고 준비한 47인 중의 한분이 우리 수원 출신의 김세환 선생이다. 선생은 1899년 11월 18일 수원시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났다
2008-01-16 17:19:02
우리 모두가 즐겨 부르는 ‘고향의 봄’을 지은 분이다. 우리에게는 홍난파 선생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선생의 원래 이름은 홍영후이며, 난파는 선생의 호이다. 홍난파 선생은 1898년 수원군(현재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음악에 깊은 흥미를 갖고 바이올린 연주를 배워서
2008-01-16 17:10:08
우하영 선생은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지 수원을 빛낸 농학자이자 실학자이다. 1741년에 수원 지방(지금의 화성군 매송면 어천리)에서 태어나 1812년 72세를 나이로 돌아가셨다. 우하영 선생은 평생 벼슬을 한 적은 없으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농가총람’과 ’관수만록’, ’천일록&rs
2008-01-16 16:57:33
한명윤은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의 충신으로, 1542년 지금의 화성군 양감면 정문리에서 태어났다. 26살 때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존경을 받았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대장이 되어 크게 활약을 하였으나, 다음해 상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어 왜적과 맞서 용감히 싸우
2008-01-16 16:54:19
최루백 - 하늘이 내린 효자 고려 의종 때의 효자로, 당시 수원의 향리 최상저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수원뿐만 아니라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했으며, 한림학사 벼슬에까지 오른 분이다. 아버지를 잡아 먹은 호랑이를 때려 죽여 원수를 갚은 그의 효행은 너무도 유명하여 ’오륜행실
2008-01-16 16:47:47
김준룡(金俊龍) (본관 : 원주(原州), ? ― 1641) 김준룡 장군은 병자호란 당시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재임하면서 관할 군사들을 이끌고 수원 광교산에 진을 치고, 광교산 전투에서 청 태종의 사위인 ‘백양고라’와 장수 3명을 포함 하여 수많은 적병을 살해하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치열한 싸움
2008-01-16 16:04:55
이 고(李 皐) (본관 : 여주(驪州), 1338 - 1420) 이고 선생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관직제수를 거부하고 각처에 은둔한 고려 충신 3학사 가운데 한 분으로, 수원에 은거한 절개 있는 선비로 알려져 있다. 이고 선생의 행적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살펴보면 새 왕조 조선에서 대간의 직책으로 활동하다가 민생
2008-01-16 16:00:27
- 역대 최연소 기록이며 음악천재성 평가 받음 - 난파음악상 수상(현재 연주 활동) 년 도 활 동 내 용
2008-01-07 13:46:26
근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나혜석(羅蕙錫, 1896∼1948, 호는 晶月)은 근대 미술 사상 최초 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알려졌을 뿐, 여성 작가와 여성해방론자로서의 면모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다. 전 근대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 오면서 봉건적인 사회로부터 독립한 개인의 자아를 형성하는 개성의 확립이 문
2008-01-07 13:13:26
1898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 태어나 1941년 8월 30일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44세의 삶과 예술이 바로 한국근대양악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12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를 졸업한 그는, 1913년부터 3년 동안 음악학교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과'에
2008-01-07 11:40:40
정조대왕은 효심이 지극했다. 또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듯이 백성을 보살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효성에 대해서는 가히 '하늘이 낸 효자(出天之孝)'라 할 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조대왕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것도 친할아버지가 아
2008-01-03 16:27:18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김이환)의는 매년 신년 하례식에 이어 팔달산 성신사 (城神祠)터에서 전 회원의 마음을 모아 성신(城神)에게 제를 올리는 예를 갖추고 있다. 필자도 그 모임의 말미에 이름을 걸어두고 있는 터여서, 화성을 깊이 사랑 하고 연구하는 회원들과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 옆 잔디
2008-01-03 16:11:07
정조대왕의 재임기간을 가리켜 ‘조선시대 르네상스’라고 표현한 글들을 종 종 읽는다. 필자 개인적으로 대단한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서구의 문예부흥기를 뜻하 는 르네상스라는 말을 가져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붙이는 행위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르네상스라는 말이 정조시대를 깊이 연구
2008-01-03 16:02:17
조선의 제22대 왕.호 : 홍재 본명 : 산 별칭 : 자 형운 활동분야 : 정치 주요저서 : 《홍재전서》 이름 산. 자 형운(亨運). 호 홍재(弘齋).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惠嬪)이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