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寫眞·Game·動映像/音樂 B

불효자는 웁니다.

utopia100 2010. 10. 9. 11:31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불효자는 웁니다.

 이 노래는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서 세상에 태어났다.

 이 노래가 발표되자 우리 민족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애창하며 즐겨 불렀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함을 뉘우치며 우는사람도 많았다.

특히 일제 치하에서 그들의 잔혹한 만행에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끝내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처자식을 버리고

정든 고향땅을 떠나야만 했던 많은 조선 민족들이 유랑 생활을하며 고달픈 심정을

 불효자는 웁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소나마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잔인한 만행에 숨도크 게 못쉬고 죽은 듯이 살아야만 했다.

그것 뿐이랴. 농사를 지어도 내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공출이란 명목로으로 빼앗아갔으며,심지어는 식기류 밥그릇

수저 세수대야 등 놋그릇 으로 만들어진 쇠붙이는 하나도 빼놓치 않고

모조리 강제로 압수해폭탄 또는 총알 등 무기로 사용 하고저

강제로  빼앗아가는 등 그들의 만행은 어찌 필설로 다 말할수가 있으랴.

 

그런 현실속에서 산다는 것이 또 얼마나 고통이였나.

 그야말로 죽지못해 사는 것이라고 해야할지 할말이 없다.

 당시 현실이 이렇타보니 농사를 지은 농민들의 생활은 어떠했으랴.

 알곡식은 그들에게 다 빼앗기고 잡곡이나 아니면 쑥과같은 풀이며

논바닥에 심은 자우녕 이란 걸음으로 키운 풀이며 산나물인 잡초들을 뜯어다

밀가루나 아니면 메밀가루 등으로 죽을 멀겋케 끓여서 먹는 등 하다보니

 사람들은 영양 실조에 걸려 얼굴색은 누렇고, 일할 기력도 없으며

노약자들은 끝내 죽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조선팔도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처참한 비극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런 일들이 생기다보니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있는 동포들은 구전으로 이러한

소식을 전해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이야 어떠했을까.

 고향이 그립고 부모형제 아니 처자식이 보고파도 못가는 그들의 심정이 어떠 했을까.

 이러다보니 술이라도 한잔 마시게되면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면서

 눈물 콧물 주체를 못하며 마냥 울면서 탄식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비극이란 말인가.

노래는 그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작사작곡을 하게된다.

그래서 유행가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민족들이 애창하게 되자 국민의 노래,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또 못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이 노래가 이처럼 우리민족들에게 큰위로가 됐다.

아니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케한다.

가수 진방남은 첫 번째 데뷔곡으로 이 노래를 불러서 신인가수로서 성공을 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서 가수로서 성공을 했으며, 이어서 계속

그의 노래가 발표되면 레코드도 많이 팔리는 대형 가수로 급성장하게 됐으며,

 그의 본명 박창오는 가수인 진방남으로 새롭게 탄생했으며,

우리나라 가요예술인으로 평생 그의 외길을 만들어 줬다.

이노래는 가수 진방남의 일생 일대에 한이 담긴 슬픈 노래다.

 앞으로도 이노래는 영원한 국민의 노래로 남을것이다.

 편의상 존칭을 생략한점 이해 해주시기바랍니다.

 가수 진방남은 현재 89세의 고령에도 살아생전 어머님에게 효도하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하며 마음 아파함을 후배 가요인들에게 그의 효심을 털어놓을 때가 간혹 있다.

 


'합죽이' 김희갑(1922~1993 함남 장진)은 6.25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웃음으로 궁핍한 삶을 달래준 제1세대 희극인으로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코미디와 영화 그리고 노래로 종횡무진 연예계를 누빈 그는

 막동이 구봉서, 홀쭉이 양석천, 뚱뚱이 양훈, 이종철등과 함께

배꼽을 쥐게한 영화 '오부자' (1959)로 크게 명성을 얻었고,

그후 '와룡선생 상경기'(1962) '팔도강산'(1967)등으로 정상의 인기를 이었다.

 

 1946년 유랑극단 에서 시작된 그의 50년 희극인생은,

 700여편의 영화와 악극, TV방송에 담아낸 서민적인 풍모와

정감 서린 웃음으로 어려운 시절의 대중들을 감싸 주었다.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 임화수에게 폭행당한 사건도 유명한 일화로 기억된다.


 
 
 
불효자는 웁니다 -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 -  대금연주

 

 

불효자는 웁니다 - 박재란

 

불효자는 웁니다 - 오기택


불효자는 웁니다 - 조용필

 

 

제공; 다락방속의 음악세상 - 쿤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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